어원 이야기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본래 화엄학에서 세계를 보는 두 차원이다. 이(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 사(事)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가리켰다. 조선시대에 와서 이판승은 참선·경전 연구·포교에 힘쓰는 수행승을, 사판승은 절의 살림과 운영을 맡는 행정승을 뜻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선은 숭유억불의 나라였다. 승려는 천민으로 떨어졌고 조선 말기에는 도성 출입조차 금지당했다.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이판이든 사판이든' 더는 갈 데 없는 신분의 막다른 길로 들어선다는 뜻이었다. 그 막다른 처지가 곧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되었다. 고결한 불교 철학 용어가 한 시대의 차별을 거치며 절박함의 대명사로 변한 것이다.
같은 단어가 시대의 편견을 통과하면 정반대 무게를 얻는다. 진리를 가르던 말이 막다른 골목의 말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는 한 종교를 천대한 역사가 통째로 들어 있다.
의미의 변화
How It Is Used
이판사판이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
시험도 망쳤겠다 이판사판으로 면접에서나 솔직하게 말했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이판사판 심정으로 사업에 전 재산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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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Hook
理(이치 리)와 事(일 사)를 '판단(判)'한다 → 본질도 현실도 다 따져봤는데 답이 없는 막다른 길.
"진리를 가르던 두 글자가 막다른 골목의 이름이 되기까지, 그 사이엔 한 시대의 차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