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대의 잡채 — 면 없는 시절
광해군 시대(1608-1623) 「수문사설(秀文事說)」: 임금이 잡채를 좋아해 잡채 잘 만드는 신하 이충(李冲)을 호조판서로 발탁했다는 기록. 그러나 그 시기 잡채는 면이 아니라 가늘게 썬 채소·고기를 양념해 무친 것. 당근·시금치·도라지·오이·표고·계란지단·소고기 등을 각각 따로 양념해 합치는 정교한 요리 — 손이 많이 가는 격조 높은 음식이었다.
雜菜 — a dish named "many vegetables", noodles added a century later
광해군 시대(1608-1623) 「수문사설(秀文事說)」: 임금이 잡채를 좋아해 잡채 잘 만드는 신하 이충(李冲)을 호조판서로 발탁했다는 기록. 그러나 그 시기 잡채는 면이 아니라 가늘게 썬 채소·고기를 양념해 무친 것. 당근·시금치·도라지·오이·표고·계란지단·소고기 등을 각각 따로 양념해 합치는 정교한 요리 — 손이 많이 가는 격조 높은 음식이었다.
20세기 초 중국에서 한국으로 당면(粉條, 녹두·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투명한 면) 제조법이 전해졌다. 당면이 채소·고기를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잡채는 더 풍성한 한 그릇 요리로 진화했다. 1920-30년대 한식당 메뉴에 정착. 1960-70년대 가정식으로 보편화. 현재 잡채는 면을 빼고는 상상이 안 되지만 — 면 없는 잡채가 본래 모습이었다.
한국 잔치 — 결혼식·환갑·돌잔치·명절 — 에서 잡채는 빠지지 않는다. 이유: (1) 시각적으로 화려함 — 5가지 색 (당근 적, 시금치 청, 계란 황, 고기 갈, 면 백) 오방색 음식, (2) 손이 많이 가서 정성의 표시, (3) 식어도 맛 유지 — 잔치상에 오래 둘 수 있음. "그 집 잡채가 맛있다"는 칭찬이 한국 어머니에게 가장 큰 격찬.
"雜(잡)"은 옷 의(衣) + 모일 집(集) → 본래 "여러 가지가 모인 것". 잡학(雜學)·잡지(雜誌)·잡곡(雜穀) 모두 雜이 들어간다. 「장자(莊子)」 천지편: "通於一而萬事畢" — 하나에 통하면 만 가지가 끝난다. 雜은 부정적 어휘 같지만 「장자」가 가리키는 것은 다양함을 하나로 통하게 하는 깊이. 잡채는 그 정신의 음식 — 모든 색과 결이 한 그릇에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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